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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Divina Commedia, 샘물을 길어 올리다

어떻게 도망칠 것인가? - Inferno 13:70~72

by pied_piper33 2026. 2. 25.

지옥편 제13곡에는 피에르 델라 비냐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2세 황제의 신임을 받아 20년간 충성하며 '황제의 마음을 여는 열쇠'를 갖게 되는 자리까지 올랐으나 정치적 반대자들의 모함으로 반역 죄인이 되어 두 눈을 뽑히고 감옥에 갇히면서 처참하게 몰락한다. 

"나의 영혼에 닥친 모욕을 견디지 못하여
죽음으로 그 모욕을 피하려고 했지
이게 의로웠던 나를 더 부끄럽게 할 줄이야"

L'animo mio, per disdegnoso gusto,
credendo col morir fuggir disdegno,
ingiusto fece me contra me giusto
(번역 지어선)

피에르 델라 비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리고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에 단테를 만난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피에르에게 물어보라고 말한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아무 말도 못하겠어요"
ch'i' non potrei, tanta pietà m'accora

사형 선고를 받고 고향인 피렌체로부터 추방된 단테에게 피에르는 자기 자신의 또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단테 역시도 수치스러운 자신의 삶을 자기 손으로 마감해버리는 걸 수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지옥이 피에르에게 내린 형벌은 아마도 단테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내리고 싶은 형벌이었는지도 모른다. 지옥은 피에르에게 식물이 되는 형벌을 내린다. 괴물이 지나갈 때마다 피에르는 고통 속에서 가지가 꺾이고 피를 흘리고 비명을 지른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죽음으로 고통으로부터 겨우 탈출한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내리는 단테의 지옥에 대해서 도저히 공감가지 않는다. 아마 신곡을 쓴 작가 단테 역시도 피에르가 또다시 영원히 겪어야 하는 무시무시한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테도 죽고 싶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죽지 못하도록 납득 가지 않는 영원한 고통을 스스로에게 약속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단테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했던 것이다.

'아무리 괴로워도 어떻게서든 살아있자..'

인생은 짧다. 힘들면 버티지 말고 그냥 도망치는게 옳다. 다만, 도망의 옵션에서 지워야 할 것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도 지우는게 맞다. 

"의로운 자기 자신을 너까지 불의하게 대우하지 마라"

단테는 이 한마디를 하고 싶어서 제13곡을 썼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