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통해서 영원한 고통 속으로 들어간다
Per me si va ne l'etterno dolore" (번역 지어선)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따라서 '지옥'에 간다. 지옥의 입구에는 '나를 통해서 슬픈 도시로, 나를 통해서 영원한 고통으로, 나를 거쳐서 타락한 무리의 일원이 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이 적혀 있는 문이 있다.
여기서 '나'는 지옥 문을 의미하지만, (지옥으로 들어가는 단테가 아니라 신곡의 저자인) 단테는 이 부분을 소리 내어 읽는 동안 '나'를 지옥문으로 이해하는 문맥 상의 이해와 '나'를 그냥 자기 자신으로 읽게 되는 문자적인 이해가 중첩되도록 의도했던 것 같다.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는 관문은 '지옥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지옥, 그것은 타인이다 L'enfer, c'est les autres"
단테는 '타인'이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듯 보인다. 물론 '타인'이 지옥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타인이라는 지옥은 '나'를 통해서 들어간다.
*사진 속 조각은 프라하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Karel Dvorak의 'America'라는 작품임. 조각가의 이름 Dvorak을 보면서, 나이를 고려할 때 아마도 할아버지인 작곡가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From the New World Symphony)를 미술로 재해석한 작품을 만들었구나라는 상상을 함. 즉, 할아버지가 미국의 광활한 대자연과 보헤미아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대비한 음악을 만들었다면, 손자에 와서는 자본주의의 맨얼굴을 보는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내 맘대로 의미를 부였했던 것.. 알아보니 이름만 같을 뿐, 작곡가 드보르작과 조각가 드보르작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고 함. 어찌되었든 저 작품에 붙은 'America'라는 이름은 매우 적절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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