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성공이라는 표면적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김영하, '여행의 목적' 중에서
"다시 우리는 별을 보게 되었다"
E quindi uscimmo a riveder le stelle
신곡의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의 마지막 문장은 모두 stelle, '별'이라는 단어로 끝난다. 지옥의 별없는 공간에서 벌어진 끔찍한 비극에서 벗어난 단테는 '다시 별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안도하면서 연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별을 향해 날아오르는 의지가 가득했다"
puro e disposto a salire a le stelle
연옥은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았으나 아직 천국에 들어가기에는 자격이 모자란 영혼들이 연단되는 곳이다. 여기서 깨끗해진 영혼들은 천국으로 올라간다. 연옥을 경험하고 나서 단테는 별을 향한 소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
"태양과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
l'amor che move il sole e l'altre stelle
천국에 가서 단테는 별 속으로 들어갔을까 아니면 별이 되었을까?
지금까지 별의 부재를 괴로와했고, 다시 별을 향한 소망을 얻었던 단테는 천국에 가서는 오히려 별이 꿈꾸지 않게 된다.
단테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환상(꿈)은 이제 힘을 잃었다 A l'alta fantasia qui mancò possa'
지금까지 추구하며 달려온 별을 향한 소망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 것이다.
단테는 다른 것을 본다. 별과 태양을 움직이는 '사랑'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가치가 그것이다.
별을 향해 시작한 단테의 여행은 별이 아닌 것을 발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소설가 김영하의 혜안에 다시한번 공감하는 순간이다.
새벽의 프라하에서 단테와 여행을 함께한 나는 과연 무엇을 발견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볼 차례다.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적어도 원래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원리는 내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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