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시간

방랑하는 운명

pied_piper33 2025. 6. 29. 07:15

소설가 김영하의 책 '여행의 이유'에는 생각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구절이 들어있다.

인맥, 산업, 전문 분야와 같은 어느 땅에 뿌리박고 세월이 깊어질 수록 잔뿌리가 땅 깊숙히 파고 들어서 땅과 뿌리가 한몸이 되는 직업들은 굳이 방랑해야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것들은 투입과 산출이 명확하지 않고, 그 결과물은 정성적일 수 밖에 없으니 모든 사람에게 환영만 받을 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이 김영하가 제시하는 방랑으로 떠밀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내 지난 커리어를 돌아보면,

마케팅에 있을 때는 그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마케터보다 경험이 짧았고, 파이낸스로 옮겼을 때는 아예 회사의 관리회계 히스토리를 모르는 상태였고, 전략에서는 흔한(?) 외국 MBA 졸업장도 없는 백지 스펙인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 결국 해야하는 것도 역시 '생각' 뿐이었던 듯 하다.

그렇게 보니, 나의 '방랑'이 설명이 된다. 가진 것 없이 '생각'을 무기로 긴 방랑을 해오고 있으나 그럭저럭 먹고 살고 있으니 다행스럽기도 하다.

문득, 머리 속을 지나가는 질문 하나.. '생각도 땅이 되어줄 수 있을까?'

아니다.
 
땅이 되는 순간 생각은 더이상 생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땅'은 앞으로도 소유하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