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단상

다 알아야 하지만 다 알 수 없는 리더의 딜레마

pied_piper33 2024. 12. 10. 11:50
S그룹에 다닐 때 얘기다.
 
"사장님께서 너 찾으신다.."
 
저 멀리 구름 위에 계신 천상계의 존재이신 사장님께서 겨우 사원 4년차인 나를 왜? 어쨌든 떨리는 마음으로 사장님이 계시는 곳으로 갔다. 사장님께서 경상도 산골 악센트가 그대로 살아있는 음성으로 맞아주신다.
 
"이리 오그라"
 
"예"
 
"이기, 몬가 재밌는기 같은디 몬 알아먹겠다. 설명해봐라"
 
"예"
 
땀을 뻘뻘흘려가면서 한시간여를 설명했다.
 
"내.. 니 말하는거 반도 몬 알아먹었지만, 맞는거 같네. 잘해 보그라."
 
"예 ^^;"
 
그때, 내가 설명해드렸던 건 약간 복잡한 회귀분석 모델이었다.
 
신규고객이 새로 가입한 시점의 가용한 얼마 안되는 정보만을 사용해서 80% 미만의 정확도로 고객의 향후 행동 방향성을 분류해서 마케팅의 정보로 활용하는 것이 모델의 목적이자 내용이었다.
 
어려운 통계용어 뿐만 아니라 당시 우리가 일하던 골방(당시 CRD라고 부르던)에서만 쓰이던 은어까지 사용해서 설명했으니 당시 나이가 60살이 넘으셨던 연세 많으신 사장님께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셨을리는 없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들으시고, 중간중간 질문하시고 끄덕이셨던 사장님의 모습은 내게 큰 감동이었다.
 
그때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은 이후 누가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론과 대안을 고민할 수 있는 내 마음 속 격려이자 에너지원이 되어 주었다.
 
리더는 다 알아야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실무자만큼 다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다.
 
알아야 하지만 다 아는게 불가능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최선을 다해 잘 들어주면서 회사의 구성원들을 믿고 격려하는 것이다.

 

리더가 자신이 이해할 때까지 설명을 강요한다면 또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리더가 책임지지 않고 방치한다면, 구성원들은 리더를 이해시킬 수 있을 만큼 이상의 디테일을 고민하지 않게 되고 이때부터 회사에서 리더 눈에 보이는 영역과 리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 사이의 갭은 커지기 마련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영역이 결국은 보이는 영역을 지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