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시간

책 읽기 - 타자를 만나는 통로

pied_piper33 2024. 11. 19. 09:04
"탈무드의 문장은 구전과 어쩌다 필기된 가르침을 집대성한 것이다. 따라서 대화 안에 있었던 논쟁적인 본래의 생명을 탈무드에 되돌려 놓는 일이 중요하다. 그때 비로소 다양한 의미가 일어나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 에마뉘엘 레비나스
 
레비나스에 따르면 '탈무드'는 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문자를 읽을 수 있고 문자에 담긴 의미를 해독할 수 있다고 해서 탈무드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고 간주되지 않는 것이다.
 
탈무드의 본질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이루어진 토론이고 그 토론을 통해서 발전적으로 진화하고 계승되는 과정 즉 '구전'이므로 그 '구전(또는 대화)의 과정없이는 문자로 고착시킨 '책'을 읽었다고 해서 탈무드의 세계와 만났다고 볼 수 없다.
 
여기서 레비나스가 사용하는 스승과 제자의 개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레비나스에게 있어서 '스승'은 압도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전수해주는 주체가 아니고, 제자 역시도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며 스승의 말을 되뇌이는 객체가 아니다.
 
제자에게 스승은 나와 다른 우주를 소유한 '타자'이다. 스승을 통해 제자는 타자의 생각를 존중하고 타자의 세계를 여행하고 타자의 신화를 경험한다.
 
이렇게 스승을 섬기는 일과 신을 믿는 일 그리고 타자와 관계하는 일은 동일한 몸짓이 되며, 탈무드라는 텍스트를 읽는 것의 의미는 이렇게 단독의 행위가 아니라 관계 맺기의 확장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레비나스의 탈무드 읽기 방법론은 탈무드에 국한될 필요없이, 모든 텍스트 읽기에 적용될 수 있을 듯 하다.
 
배워서 남주고 그렇게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면, 그리고 공부가 많이 배운 헛똑똑이 또는 전문지식을 보유한 악인이 되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책 읽기'라는게 관계 맺기의 한 부분이라는 레비나스의 통찰은 꽤 참고할 만하다.